PresenTea FOR YOU 2017 summer

부부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김희선,심규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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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는 세 번째로 살 집을 보러 다니다가 남향으로 큰 창을 낸 빌라를 발견했다. 창밖으로 대나무가 보이는 집을 1년에 걸쳐 천천히 채워나가고 있다. 그러는 동안 남편은 찻자리를 즐길 줄 알게 되었고, 부인은 집에 머무는 시간이 즐거워졌다.

edit. 이안나 - photographs. 이주연

김희선이 티팟에 잎차를 우린 후 백색 숙우에 차를 따르고 있다. 차를 맛있게 마시는 법을 묻자, 심규일이 옆에서 얄밉게 웃으며 말한다. "희선 씨, 다도의 '다'자는 알아요?" 아내가 곧장 받아친다. "아는 건 디귿 정도?" 찻물이 짙어지는 동안 그렇게 농담을 주고받더니 김희선이 말을 잇는다.
"기본적인 것만 지키면 우리가 관념적으로 알던 차 맛이 더 깊고 풍성해져요. 입문자라면 찻물 온도를 맞추는 게 어렵다고 생각하겠지만, 숙우가 있다면 의외로 쉽게 해결돼요. 팔팔 끓인 물을 숙우에 옮겨 따를 때마다 10℃씩 낮아지거든요. 끓은 물을 숙우에 3번 옮겨 따르고 실제로 재봤더니 딱 70℃가 되던데요."
김희선은 디자인 스튜디오 FNT의 크리에티브 디렉터다. 또한 리빙 편집숍 TWL을 운영하고 있다. TWL은 다기를 비롯해 서울에서 눈 씻듯 고를 수 있는 물건들을 파는 곳이다. 그래서 김희선의 집을 둘러보는 것은, 취향 좋은 이가 오랫동안 아끼듯 사용한 '진짜 아름다운 사물'을 발견하는 기쁨을 준다. 이 집에는 심규일의 보물도 여럿 있는데, 그중 하나는 그가 직접 만든 소반이다.

김희선은 둘만의 찻자리를 즐길 때도 소박하지만 격식을 갖춘 찻상을 차린다.
김희선의 즐거움은 곁에 있는 식물에게 물을 주고 마음을 다하는 일이다. 이 집의 호젓하고 차분한 풍경을 만드는 데는 식물의 공이 크다.
심규일이 만든 가구들은 김희선이 키우는 식물들과 자연스럽게 어우러진다.

심규일은 가구 디자이너다. IT기업에서 기획자로 일하다가 한국 문화의 집(KOUS)에서 무형문화재 보유자와 전수자들에게 소목 등 공예기술을 배우면서 가구 디자이너로서 첫 수를 뒀다. 고정적으로 가구를 주문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아직은 뜸을 들이고 있다"고 한다. 자기다운 유연한 방식으로, 그 모든 것이 천천히 두고두고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듯이 말한다. "마음 속으로 준비하고 있어요."
그러고 보니 둘의 공통점은 '시간'을 대하는 태도다. 김희선이 처음 TWL을 모색했던 이유도 지금껏 살아왔던 방식과는 다른 '시간 사용법'에 대한 고민에서 비롯됐다. 이제 부부는 일상의 소중함을 둘만의 방식으로 지키며 살고 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처럼 놀아요. 이러다 산에 가서 약초를 캐겠구나 싶을 만큼 자연을 많이 보러 다녀요. 관광지에 가서 억지로 끌려 다니지는 않고, 소읍을 산보하듯 다녀요."

심규일에게 차는 잠을 깨우는 알람 같은 것이다. 천천히 차를 음미하면서 하루를 시작하듯이, 그의 삶도 자기다운 유연한 방식으로 향하고 있다.

김희선, 심규일 부부가 여유로울 수 있는 이유는 덜 바쁘고, 더 가졌기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디자인 스튜디오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서 일의 총량이 달라지진 않았다. 대기업을 박차고 나와서 공예를 배우고 가구 디자이너로 살아갈 그가 느낄 심리적 부담감이 빙상에서의 트리플 악셀보다 적기만 할까. 부부의 삶을 관찰하며 우리가 무엇을 위해 살아가고 있는지 고민해본다. 100살까지 살아야 한다는 시대, 깨달음은 빠를수록 좋을 것이다. 차 한잔을 마시면서 갑자기 찾아야 할 삶의 방식을 천천히 고민해보길."
 
* 기사 전문은 <오설록> 매거진 2017년 상반기호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오설록>은 전국 오설록 티하우스와 티샵에서 무료로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