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ry 2016 winter

차로 맺은 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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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에게 보낼 차 선물을 옆에 두고 한 자 한 자 편지를 쓰는 사이,
천리 먼 길에 있는 친구에게 보내졌던 추사 김정희의 편지가 자꾸 생각난다.


열 개의 벼루에 구멍을 내고, 천 자루가 넘는 붓을 몽당붓으로 만들면서 ‘추사체’를 완성한 조선의 예술가.

추사 김정희 1786-1856, 이하 추사는 당대 사람들에게 시와 문장의 대가로 불렸고, 지금의 고고학이나 문헌학을 연구한 고증학자이자 금석학자로도 역사에 이름을 남겼다. 그러나 한 사람에게만은 그저 속 깊고 뜻 맞는 친구로 기억될 것이다. 한국 차문화를 정립한 초의선사 1786-1866, 이하 초의에게 추사는 자신이 만든 차의 맛을 제대로 알아주는 벗이었다. 초의가 32세에 추사를 그리며 쓴 시 <불국사 회고>는 연애편지에 가깝다. “오랫동안 여행하고 있는 그대가 못내 그리워 / 자하문 밖 맑게 갠 하늘을 바라보네 / 세상의 불국토는 차라리 얻기라도 쉽지만 / 서로 만나 못 다한 정을 누릴 수나 있을까” 시 구절에서 ‘오랫동안 여행하고 있는 그대’는 55세에 당파싸움에 휘말려 제주로 유배를 떠난 추사다. 조선 시대에 제주는 사화와 당쟁에 휘말린 이들을 천리유배 보내던 귀양지다. 기약 없이 기다리는 귀양살이도 참담한 심경일 텐데, 추사에게는 집 사면을 가시나무로 두르고 울타리 안에서만 기거하는 형벌이 내려졌다. 마음대로 이리저리 움직일 수 없는 중벌에 처한 추사에게 편지는 삶의 낙이자 바깥과 소통할 수 있는 유일한 매체다. 그리고 초의가 보내주는 차는 귀양살이를 버티게 하는 힘이었다. 추사가 초의에게 보낸 편지는 지금까지 발견된 것만 50여 통이다. 그 중 11통은 걸명 乞茗 편지다. 직역 하면 ‘차를 구걸한다’는 뜻이지만, 옛 다인들은 일품의 차를 마시기 위해 차를 간곡하게 청하는 시문을 서로 주고 받으며 깊은 차담을 나누었다. 섬에서 오갈 수 없던 추사에게 초의가 만든 차는 그리운 벗의 목소리와 같았을 것이다. 스스로 “탁마의 여진을 씻고 풍토병을 달랬다”고 적었듯이, 추사는 차를 마시며 병을 달래고 시름을 잊었다. 그렇게 초의는 차를 보냈고, 추사는 편지로 화답했다. 차를 받으면 추사는 두루 뭉술 말하는 법이 없었다.

맑고, 차고, 색과 맛과 향이 없는 산 중의 샘물을 길어다가 차를 달이던 초의처럼, 추사는 벗의 차를 마시고 나면 정중하면서도 정확하게 차의 가치를 편지에 눌러 적었다. ‘늘 볶는 법이 살짝 도를 넘어 정기가 녹아날 것 같은 생각이 드니 만약 다시 만들 경우에는 곧 화후 火候, 불의 상태를 경계하는 것이 어떻겠소’, ‘금년에 차를 만들면 무더울 때 보내지 말고 반드시 가을을 기다려 서늘해지면 보내주는 것이 좋겠소’. 편지의 행간을 읽을 줄 아는 초의는 이슬을 맞지 않는 날을 골라 단단하게 싼 차 상자를 보내고, 뿌리 깊은 차나무를 추사에게 보내기도 했다. 추사는 묘목을 마당에 심고 정성껏 가꿔 직접 차를 마시기도 했는데 이때 제주에 차가 전해졌다고 한다. 추사의 편지에서 마음 깊이 다가오는 편지 구절을 고르자면 이 부분이다. “아주 어릴 적에 초의선사를 만나지 않았다면 어떻게 멀리 돌아다닐 생각을 하며 지금까지 이처럼 홀로 담담하고 고요하게 살았겠는가. 선사와 수년을 왕래하다 보니 기질과 취미가 동일하여 노년에 이르기까지 변하지 않았다.” 마음이 서로를 향하는 사람이 곁에 있다는 것. 기질과 취미를 포갤 수 있는 친구에게 편지를 보내는 것. 그런 사람에게 편지 한 통을 보내고 싶은 시절이다. 그것만으로 우리는 위로 받을 수 있다. 너무나도 충만하게.

글. 이안나 / 일러스트레이션. 함신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