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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지 아니한家·유어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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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고성군 고성읍 월평3길. 어림잡아 해발 600m쯤 되는 벽발산이 아버지처럼 든든하게 뒷짐 진 마을. 그 터에 유어예 가족이 산다. 아버지와 작은딸이 단아한 백자를 만들고, 어머니와 큰딸은 그 도자기에 차와 차과자를 지어 담는 곳. 네 식구가 꾸리는 유어예 다실에서 차를 나눠 마셨다.

edit. 이안나 - photographs. 이주연

서울남부터미널에서 출발한 버스가 족히 4시간을 내달리고, 또 택시로 한참을 달려 좁은 샛길에 다다른 뒤에야 네 식구가 사는 아트막한 집터가 눈에 띈다. 두 기의 장작가마가 있는 도자기 요장 '천광요', 도자 전시장이자 찻집인 '유어예' 그리고 가족이 사는 집이 마당을 사이에 두고 ㄷ자 구조로 옹기종기 모여 있다. 집 어귀에 아버지 박용태, 어머니 김미순, 큰딸 혜림, 작은딸 예슬이 마중을 나와 있었다.

유어예 입구에 내걸린 현판에는 '하늘의 빛을 담아낸 도자'라고 뜻의 천광요가 깊게 새겨져 있다.

가족의 하루는 오전 8시 아침을 먹은 뒤 찻상에서 차 예닐곱 잔을 마시면서 느긋하게 시작된다. 객지 손님을 맞느라 가족은 덩달아 아침 찻자리를 한 번 더 갖게 된 셈이다. 어머니가 정성껏 우린 차 한 잔을 받아 든다. 한 모금 머금자 노곤하던 몸이 개운해지는 듯하다.
가족 찻자리에 사용하는 다기도 천광요 작품이다. 마지막 한 방울의 찻물까지 깔끔하게 떨어지는 다관을 만들기 위해서 몸통 크기와 주둥이 각도까지 살폈을 만듦새. "다완은 손에 쥐면 무게감이 느껴지면서도 손끝과 바닥에 안기는 듯한 느낌이 들어야 합니다." 차를 사랑하는 도예가가 짓는 다기에는 실용의 미와 다도의 예가 깃들어 있다. 그 진가를 알아보는 사람들은 멀리서도 그의 작품을 보러 이곳을 찾는다. 독학으로 시작한 도예가의 길. 그렇게 되기까지 긴 세월을 견디게 해준 것은 가족, 그리고 차 한잔이다. "내가 술 담배를 안 해요. 차를 마시죠."

어머니와 큰딸이 만든 차와 차과자는 아버지의 백자 그릇에 담겨 손님맞이를 한다.
구운 약과, 잣강정 등 유어예식 전통 차과자는 차의 맛을 돋우고, 입안에 잔잔한 단맛을 남기며 얌전히 사라진다.

오전 11시부터는 가족들의 몸놀림이 부산해진다. 유어예에서 어머니는 차를 내리고, 요리를 전공한 큰딸은 한국 차와 어울리는 차과자를 만든다. 뒤편에 있는 작업실에서는 아버지, 그리고 작은딸이 도예가로서의 시간을 보낸다. 여러 방면에 소질을 보이던 작은딸은 일찌감치 도예를 시작했다. 큰딸과 작은딸이 유어예를 지키는 힘이 뭘까, 궁금해졌다. 큰딸이 말한다. "우리가 유어예를 꾸려가는 이야기의 중심에는 천광요가 있어요. 아버지의 그릇을 사람들에게 알리는 게 첫 번째 목적이었죠. 그러려면 멀리서도 찾아오고 머물고 싶은 곳으로 만들어야겠다 싶었어요." 잠시 망설이다가 말을 이어간다. "작품이 전시된 곳이라 부득이하게 노키즈존(No Kids Zone)으로 운영되고 있어요. 그냥 고성에 있는 유명한 찻집으로 알고 오시는 어린이 동반 가족분들께는 정말 죄송하죠. 그래도 천광요의 작품 전시가 우선인 곳이라 조용하고 차분한 분위기를 이어가려고 해요.

맨드라미꽃 너머로 아버지가 만든 단아한 백자에 큰딸이 소담하게 핀 들꽃을 그려넣은 청화백자가 어렴풋이 보인다

천광요와 유어예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세상의 기준과 잣대가 무력해진다. 스스로가 정한 방향과 규칙에 따라 삶을 지어가는 가족. 유어예 인스타그램(@yuaye_tea)에서 본 한 문장에서 부드러운 결기, 그 뚝심을 다시 한 번느낀다. "예술을 논하고 이상한 법칙을 따지고 때때로 고상 떤다 생각할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이 공간에서 영리를 취한다고 해서 그것이, 지불하는 값이, 공간의 모든 것을 주무르는 권리를 갖는 것은 아닙니다." 문장은 확신에 차 있고, 확신은 응원을 부른다. 다시 서울에서 고성으로 가는 날은 다른 기분으로 갈 생각이다. 어머니가 좋아하는 맨드라미꽃을 들고."
 
* 기사 전문은 <오설록> 매거진 2017년 상반기호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오설록>은 전국 오설록 티하우스와 티샵에서 무료로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